맨위로가기

위서 (역사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위서(魏書)는 북제(北齊) 시대 위수(魏收)가 편찬한 북위(北魏)의 정사(正史)이다. 이 책은 북위 건국 이전 탁발부의 역사를 기록한 〈서기〉를 본기 첫머리에 두었으며, 일본 서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동위를 정통으로 하고 서위의 황제를 생략하는 등 편향적인 서술로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북위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위서에는 제기, 열전, 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사 관련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6세기 역사책 - 송서
    송서는 유송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로, 심약에 의해 100권으로 완성되었으며 유송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주변국인 고구려, 백제, 왜국 등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어 동아시아 국제 관계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 6세기 역사책 - 남제서
    남제서는 소자현이 편찬한 역사서로, 남제 왕조의 역사와 사회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기록은 동아시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남북조 시대의 문학 - 송서
    송서는 유송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로, 심약에 의해 100권으로 완성되었으며 유송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주변국인 고구려, 백제, 왜국 등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어 동아시아 국제 관계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 남북조 시대의 문학 - 세설신어
    《세설신어》는 2~4세기 중국 인물들의 일화와 묘사를 담은 책으로, 36개의 편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사적 자료이자 구어체 기록으로서 중국 문학에 영향을 미쳤고, 한국에도 전래되어 다양한 판본으로 간행되어 조선 시대에 널리 읽혔다.
  • 이십사사 - 삼국지
    진수가 쓴 《삼국지》는 위, 촉, 오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기전체 역사서로, 위지, 촉지, 오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후대에 《삼국지연의》에 영향을 주고 동아시아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 이십사사 - 명사 (역사서)
    명사(明史)는 청나라가 편찬한 명나라의 역사서로, 명나라 황제, 제도, 인물들의 기록을 담고 있으며, 자료적 가치가 높지만 명나라에 대한 부정적 묘사 및 역사 왜곡 가능성도 제기된다.
위서 (역사서)
일반 정보
제목(원제)魏書
제목(한국어)위서
저자위수
국가중국
언어한문
분야역사
시대남북조 시대
주제북위, 동위 역사
완성 연도554년
페이지 수114권
구성
제기12권
열전92권
20권

2. 편찬 배경 및 특징

《위서》는 북위(北魏)가 탁발 씨족에 의해 건국된 후, 내부 갈등으로 동위와 서위(西魏)로 분열되고, 북제(北齊)가 건국되는 복잡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편찬되었다. 550년 고양이 북제를 건국하면서, 위수에게 이 두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게 하였다.[3] 위수는 북제 황제의 지원을 받으며, 논란이 될 수 있는 조상의 기원을 찬양하려는 엘리트들의 압력을 견뎌냈다.[4]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을 얻었다.[4] 현대 독자들 역시 《위서》가 대상 왕조인 북위를 칭찬하고, 북위의 전신 국가인 대의 힘을 과장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또한, 북위 효문제가 도입한 한화된 성씨를 이전 사건에 적용하여 역사적 인물의 실제 이름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3]

《위서》와 같은 제목으로 편찬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서는 모두 9가지나 되지만, 《삼국지》의 〈위서〉와 위수의 《위서》만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는 편찬자와 시기가 미상인 《위서》의 일부 구절이 전해진다.

2. 1. 편찬 과정

북제(北齊) 문선제의 명으로 위수가 편찬하였다.[3] 위수는 북제의 신하로서 동위를 정통으로 서술하고 서위(西魏)는 의도적으로 뺐다.[3] 이러한 이유로 당대에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비판받았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수는 대(代)부터 북위 초기까지의 혼란스럽고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정리하고 일관성 있는 기록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3]

2. 2. 주요 특징


  • 본기 첫머리에 태조 도무제의 기록이 아닌 북위 건국 이전 탁발부의 역사를 기록한 〈서기(序紀)〉를 두고 있다. 이는 일본 서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3]
  • 동위를 정통으로 서술하였다.
  • 열전에 5호 16국과 남조(南朝) 국가들을 포함시켰다.
  • 불교와 도교 관련 사건을 기록한 〈석로지(釋老志)〉가 있다.
  • 북송(北宋)대에 교정되면서 일부 내용이 소실되어 《북사》를 통해 보충되었다.[1]
  • 정통 왕조를 조위 - 서진에서 북위로 직접 연결하고, 남조는 물론 일시적으로 화북을 통일한 전진의 정통성도 인정하지 않는다.[3]
  • 흉노의 한유연·후조석륵은 서진의 천하를 어지럽힌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3]
  • 유유를 한 왕조의 후예로 하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며, 국호 「송」도 인정하지 않고 「이초」라고 멸칭으로 부르고 있다.[3]
  • 남조의 인물은 어리석은 자들뿐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으며, 열전 제85의 말미 사평에서는 「(이초들은) 궁흉극미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것이 이초의 상성인가?」라고 인종차별적인 주장까지 하고 있다.[3]
  • 동진 이하 남조 제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열전」으로 취급하였다.[3]
  • 편찬 당시부터 적국을 심하게 깎아내린다는 평판이 있었다.[4]
  • 서위의 삼제 본기를 세우지 않았다.[4]
  • 남조를 「밭은 메말랐고, 섬 오랑캐가 치장하는 것과 같다. 중원의 사람들은 모두 강동의 무리들을 「맥자」(너구리)라고 하는데, 음, 여우나 너구리 종류와 다를 바 없다」고 헐뜯고 있다.[4]
  • 남조의 군주 유유는 유씨를 사칭한 것이며, 「본래 성은 '항'이고, 출신지도 알 수 없으며, 유씨 계통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고 폄하하고 있다.[4]
  • 저자의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해 공정을 잃은 기술이 이루어졌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2][4]

3. 구성

《위서》(역사서)는 이전 정사(正史)의 형식을 따른다. 총 1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황제의 삶과 사건을 서술하는 본기(紀)와 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3. 1. 제기(帝紀)

《위서》(魏書)에서 제기(帝紀)는 북위 역대 황제들의 통치 기록을 담고 있으며, 도무제 이전의 추존 황제 기록인 〈서기(序紀)〉를 포함한다. 태조 도무제(太祖 道武帝)부터 동위 효정제(孝靜帝)까지 총 12명의 황제 기록을 담고 있다.

제목시기(음력)비고
권1서기 (序紀)도무제 이전의 추존 황제(대왕) 기록.
권2태조 도무제(太祖 道武帝)376년 12월 ~ 409년 10월
(대 건국 29년 ~ 천사 6년)
권3태종 명원제(太宗 明元帝)409년 10월 ~ 423년 11월
(영흥 원년 ~ 태상 8년)
권4上세조 태무제(世祖 太武帝) 上423년 11월 ~ 439년 12월
(태상 8년 ~ 태연 5년)
권4下세조 태무제(世祖 太武帝) 下
공종 경목제(恭宗 景穆帝)
440년 1월 ~ 452년 10월
(태연 6년 ~ 승평 원년)
권5고종 문성제(高宗 文成帝)452년 10월 ~ 465년 5월
(흥안(興安) 원년 ~ 화평 6년)
권6현조 헌문제(顯祖 獻文帝)465년 5월 ~ 471년 8월
(화평 6년 ~ 황흥 5년)
권7上고조 효문제(高祖 孝文帝) 上471년 8월 ~ 485년 12월
(연흥 원년 ~ 태화 9년)
권7下고조 효문제(高祖 孝文帝) 下486년 1월 ~ 499년 4월
(태화 10년 ~ 태화 23년)
권8세종 선무제(世宗 宣武帝)499년 4월 ~ 515년 1월
(태화 23년 ~ 연창(延昌) 4년)
권9숙종 효명제(肅宗 孝明帝)515년 1월 ~ 528년 4월
(연창 4년 ~ 무태 원년)
권10경종 효장제(敬宗 孝莊帝)526년 8월 ~ 530년 12월
(효창(孝昌) 2년 ~ 영안 3년)
권11전폐제 광릉왕(前廢帝 廣陵王)
후폐제 안정왕(後廢帝 安定王)
출제 평양왕(出帝 平陽王)
531년 2월 ~ 534년 12월
(건명 2년 ~ 영희 3년)
권12효정제(孝靜帝)534년 10월 ~ 550년 5월
(천평(天平) 원년 ~ 무정 8년)


3. 2. 열전(列傳)

《위서》의 열전은 황후, 종실, 공신, 외척, 유학자, 문인, 효자, 충신, 관리, 은둔자, 예술가, 열녀, 간신, 환관 등 다양한 인물들의 전기를 담고 있다. 주변 국가 및 민족(고구려, 백제, 거란 등)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위서》 열전 목록
권수부제목록비고
권13후비(后妃)신원황후 두씨(神元皇后 竇氏), 문제황후 봉씨(文帝皇后 封氏), 환제황후 기씨(桓帝皇后 祁氏), 평문황후 왕씨(平文皇后 王氏), 소성황후 모용씨(昭成皇后 慕容氏), 헌명황후 하씨(獻明皇后 賀氏), 도무황후 모용씨(道武皇后 慕容氏), 도무선목황후 유씨(道武宣穆皇后 劉氏), 명원소애황후 요씨(明元昭哀皇后 姚氏), 명원밀황후 두씨(明元密皇后 杜氏), 태무황후 혁련씨(太武皇后 赫連氏), 태무경애황후 하씨(太武敬哀皇后 賀氏), 경목공황후 욱구려씨(景穆恭皇后 郁久閭氏), 문성문명황후 풍씨(文成文明皇后 馮氏), 문성원황후 이씨(文成元皇后 李氏), 헌문사황후 이씨(獻文思皇后 李氏), 효문정황후 임씨(孝文貞皇后 林氏), 효문폐황후 풍씨(孝文廢皇后 馮氏), 효문유황후 풍씨(孝文幽皇后 馮氏), 효문소황후 고씨(孝文昭皇后 高氏), 선무순황후 우씨(宣武順皇后 于氏), 선무황후 고씨(宣武皇后 高氏), 선무영황후 호씨(宣武靈皇后 胡氏), 효명황후 호씨(孝明皇后 胡氏), 효정황후 고씨(孝靜皇后 高氏)
권14신원제 평문제 자손
(神元平文諸帝子孫)
<신원제 자손(神元帝 子孫)>:rowspan="2"|
권15소성제 자손
(昭成子孫)
탁발식군(拓跋寔君), 진명왕 한(秦明王 翰), 상산왕 준(常山王 遵), 진류환왕 건(陳留桓王 虔), 비릉왕 순(毗陵王 順), 요서공 의열(遼西公 意烈), 탁발굴돌(拓跋窟咄)
권16도무제 7왕
(道武七王)
청하왕 소(淸河王 紹), 양평왕 희(陽平王 熙), 하남왕 요(河南王 曜), 하간왕 수(河間王 修), 장락왕 처문(長樂王 處文), 광평왕 련(廣平王 連), 경조왕 려(京兆王 黎)
권17명원제 6왕
(明元六王)
낙평여왕 비(樂平戾王 丕), 안정상왕 미(安定殤王 彌), 낙안선왕 범(樂安宣王 範), 영창장왕 건(永昌莊王 健), 건녕왕 숭(建寧王 崇), 신흥왕 준(新興王 俊)
권18태무제 5왕
(太武五王)
진왕 복라(晉王 伏羅), 동평왕 한(東平王 翰), 임회선왕 담(臨淮宣王 譚), 광양간왕 건(廣陽簡王 建), 남안은왕 여(南安隱王 余)
권19上경목제 12왕-상
(景穆十二王) 上
양평유왕 신성(陽平幽王 新成), 경도강왕 자추(京兆康王 子推), 제음선왕 소신성(濟陰宣王 小新成), 여음영왕 천사(汝陰靈王 天賜), 낙랑여왕 만수(樂浪厲王 萬壽), 광평상왕 낙후(廣平殤王 洛侯)
권19中경목제 12왕-중
(景穆十二王) 中
임성강왕 운(任城康王 雲)
권19下경목제 12왕-하
(景穆十二王) 下
남안혜왕 정(南安惠王 楨), 성양강왕 장수(城陽康王 長壽), 장무경왕 태락(章武敬王 太洛), 낙릉강왕 호아(樂陵康王 胡兒), 안정정왕 휴(安定靖王 休)
권20문성제 5왕
(文成五王)
안락여왕 장락(安樂厲王 長樂), 광천장왕 략(廣川莊王 略), 제군순왕 간(齊郡順王 簡), 하간효왕 약(河間孝王 若), 안풍광왕 맹(安豊匡王 猛)
권21上헌문제 6왕- 상
(獻文六王) 上
함양왕 희(咸陽王 禧), 조군영왕 간(趙郡靈王 幹), 광릉혜왕 우(廣陵惠王 羽), 고양문목왕 옹(高陽文穆王 雍), 북해평왕 상(北海平王 詳)
권21下헌문제 6왕- 하
(獻文六王) 下
팽성무선왕 협(彭城武宣王 勰)
권22효문제 5왕
(孝文五王)
폐태자 순(廢太子 恂), 경도왕 유(京兆王 愉), 청하문헌왕 역(淸河文獻王 懌), 광평무목왕 회(廣平武穆王 懷), 여남문선왕 열(汝南文宣王 悅)
권23위조(衛操), 막함(莫含), 유고인(劉庫仁)
권24연봉(燕鳳), 허겸(許謙), 장곤(張衮), 최현백(崔玄伯), 등연(鄧淵)
권25장손숭(長孫嵩), 장손도생(長孫道生)
권26장손비(長孫肥), 위고진(尉古眞)
권27목숭(穆崇)
권28화발(和跋), 해목(奚牧), 막제(莫題), 유업연(庾業延), 하적건(賀狄乾), 이률(李栗), 유결(劉潔), 고필(古弼), 장려(張黎)
권29해근(奚斤), 숙손건(叔孫建)
권30왕건(王建), 안동(安同), 누복련(樓伏連), 구퇴(丘堆), 아청(娥淸), 유니(劉尼), 해권(奚眷), 차이락(車伊洛), 숙석(宿石), 내대천(來大千), 주기(周幾), 두대전(豆代田), 주관(周觀), 여대비(閭大肥), 위발(尉撥), 육진(陸眞), 여낙발(呂洛拔)
권31우율제(于栗磾)
권32고호(高湖), 최령(崔逞), 봉의(封懿)
권33송은(宋隱), 왕헌(王憲), 굴준(屈遵), 장포(張蒲), 곡혼(穀渾), 공손표(公孫表), 장제(張濟), 이선(李先), 가이(賈彝), 설제(薛提)
권34왕낙아(王洛兒), 차노두(車路頭), 노노원(盧魯元), 진건(陳建), 만안국(萬安國)
권35최호(崔浩)
권36이순(李順)
권37사마휴지(司馬休之), 사마초지(司馬楚之), 사마경지(司馬景之), 사마숙번(司馬叔璠), 사마천조(司馬天助)
권38조옹(刁雍), 왕혜룡(王慧龍), 한연지(韓延之), 원식(袁式)
권39이보(李寶)
권40육사(陸俟)
권41원가(源賀)
권42설변(薛辯), 구찬(寇贊), 역범(酈範), 한수(韓秀), 요훤(堯暄)
권43엄릉(嚴棱), 모수지(毛修之), 당화(唐和), 유휴빈(劉休賓), 방법수(房法壽)
권44나결(羅結), 이발(伊馛), 을괴(乙瑰), 화기노(和其奴), 구퇴(苟頹), 설야저(薛野𧗠者), 우문복(宇文福), 비우(費于), 맹위(孟威)
권45위랑(韋閬), 두전(杜銓), 배준(裴駿), 신소선(辛紹先), 류숭(柳崇)
권46두근(竇瑾), 허언(許彦), 이흔(李欣)
권47노현(盧玄)
권48고윤(高允)
권49이령(李靈), 최감(崔鑒)
권50위원(尉元), 모용백요(慕容白曜)
권51한무(韓茂), 피표자(皮豹子), 봉칙문(封敕文), 여나한(呂羅漢), 공백공(孔伯恭)
권52조일(趙逸), 호방회(胡方回), 호수(胡叟), 송요(宋繇), 장담(張湛), 종흠(宗欽), 단승근(段承根), 함인(闞駰), 유병(劉昞), 조유(趙柔), 색창(索敞), 음중달(陰仲達)
권53이효백(李孝伯), 이충(李衝)
권54유아(游雅), 고려(高閭)
권55유명근(游明根), 유방(劉芳)
권56정희(鄭羲), 최변(崔辯)
권57고우(高祐), 최정(崔挺)
권58양파(楊播)
권59유창(劉昶), 소보인(蕭寶夤), 소정표(蕭正表)
권60한기린(韓麒麟), 정준(程駿)
권61설안도(薛安都), 필중경(畢衆敬), 심문수(沈文秀), 장당(張讜), 전익종(田益宗), 맹표(孟表)
권62이표(李彪), 고도열(高道悅)
권63왕숙(王肅), 송변(宋弁)
권64곽조(郭祚), 장이(張彝)
권65형만(邢巒), 이평(李平)
권66이숭(李崇), 최량(崔亮)
권67최광(崔光)
권68견침(甄琛), 고총(高聰)
권69최휴(崔休), 배연준(裴延俊), 원번(袁翻)
권70유조(劉藻), 부영(傅永), 부수안(傅竪眼), 이신(李神)
권71배숙업(裴叔業), 하후도천(夏侯道遷), 이원호(李元護), 석법우(席法友), 왕세필(王世弼), 강열지(江悅之), 순우탄(淳于誕), 이묘(李苗)
권72양니(陽尼), 가사백(賈思伯), 이숙호(李叔虎), 노시경(路恃慶), 방량(房亮), 조세표(曹世表), 반영기(潘永基), 주원욱(朱元旭)
권73해강생(奚康生), 양대안(楊大眼), 최연백(崔延伯)
권74이주영(爾朱榮)
권75이주조(爾朱兆), 이주언백(爾朱彦伯), 이주도률(爾朱度律), 이주천광(爾朱天光)
권76노동(盧同), 장열(張烈)
권77송번(宋翻), 신웅(辛雄), 양심(羊深), 양기(楊機), 고숭(高崇)
권78손소(孫紹), 장보혜(張普惠)
권79성엄(成淹), 범소(範紹), 유도부(劉桃符), 유도빈(劉道斌), 동소(董紹), 풍원흥(馮元興), 녹여(鹿悆), 장습(張熠)
권80주서(朱瑞), 질렬연경(叱列延慶), 곡사춘(斛斯椿), 가현도(賈顯度), 번자곡(樊子鵠), 하발승(賀拔勝), 후막(侯莫), 진열(陳悅), 후연(侯淵)
권81기준(綦儁), 산위(山偉), 유인지(劉仁之), 우문충지(宇文忠之)
권82이염지(李琰之), 조형(祖瑩), 상경(常景)
권83上외척(外戚) 上하눌(賀訥), 유나진(劉羅辰), 요황미(姚黃眉), 두초(杜超), 하미(賀迷), 여비(閭毗), 풍희(馮熙), 이준(李峻), 이혜(李惠)
권83下외척(外戚) 下고조(高肇), 우경(于勁), 호국진(胡國珍), 이연실(李延實)
권84유림(儒林)양월(梁越), 노추(盧醜), 장위(張偉), 양조(梁祚), 평항(平恆), 진기(陳奇), 상상(常爽), 유헌지(劉獻之), 장오귀(張吾貴), 유란(劉蘭), 손혜위(孫惠蔚), 서준명(徐遵明), 동징(董徵), 조충(刁沖), 노경유(盧景裕), 이동궤(李同軌), 이업흥(李業興)
권85문원(文苑)원약(袁躍), 배경헌(裴敬憲), 노관(盧觀), 봉숙(封肅), 형장(邢臧), 배백무(裴伯茂), 형흔(邢昕), 온자승(溫子昇)
권86효감(孝感)조염(趙琰), 장손려(長孫慮), 걸복보(乞伏保), 손익덕(孫益德), 동낙생(董洛生), 양인(楊引), 염원명(閻元明), 오실달(吳悉達), 왕속생(王續生), 이현달(李顯達), 장승(張昇), 창발(倉跋), 왕숭(王崇), 곽문공(郭文恭)
권87절의(節義)우십문(于什門), 단진(段進), 석문덕(石文德), 급고(汲固), 왕현위(王玄威), 누제(婁提), 유갈후(劉渴侯), 주장생(朱長生), 우제(于提), 마팔룡(馬八龍), 문문애(門文愛), 조청(晁淸), 유후인(劉侯仁), 석조흥(石祖興), 소홍철(邵洪哲), 왕영세(王榮世), 호소호(胡小虎), 손도등(孫道登), 이궤(李几), 장안조(張安祖), 왕려(王閭)
권88양리(良吏)장순(張恂), 녹생(鹿生), 장응(張應), 송세경(宋世景), 노옹(路邕), 염경윤(閻慶胤), 명량(明亮), 두찬(杜纂), 배타(裴佗), 두원(竇瑗), 양돈(羊敦), 소숙(蘇淑)
권89혹리(酷吏)우낙후(于洛侯), 호니(胡泥), 이홍지(李洪之), 고준(高遵), 장사제(張赦提), 양지(羊祉), 최섬(崔暹), 역도원(酈道元), 곡해(谷楷)
권90일사(逸士)휴과(眭誇), 풍량(馮亮), 이밀(李謐), 정수(鄭修)
권91술예(術藝)조숭(晁崇), 장연(張淵), 은소(殷紹), 왕조(王早), 경현(耿玄), 유영조(劉靈助), 강식(江式), 주담(周澹), 이수(李脩), 서건(徐謇), 왕현(王顯), 최욱(崔彧), 장소유(蔣少游)
권92열녀(列女)최람 처 봉씨(崔覽妻封氏), 봉탁 처 유씨(封卓 妻 劉氏), 위부 처 방씨(魏溥 妻 房氏), 호장명 처 장씨(胡長命 妻 張氏), 평원여자 손씨(平原女子 孫氏), 방애친 처 최씨(房愛親 妻 崔氏), 경주정녀시 선씨(涇州貞女兕 先氏), 요씨 아내 양씨 (姚氏 婦 楊氏), 장홍초 처 유씨(張洪初 妻 劉氏), 동경기 처 장씨(董景起 妻 張氏), 양니 처 고씨(陽尼 妻 高氏), 사영주 처 경씨(史映周 妻 耿氏), 임성국태비 맹씨(任城國太妃 孟氏), 구금룡 처 유씨(苟金龍 妻 劉氏), 노원례 처 이씨(盧元禮 妻 李氏), 하동효녀 요씨(河東孝女 姚氏), 조사준 처 노씨(刁思遵 妻 魯氏 )
권93은행(恩幸)왕예(王叡), 왕중흥(王仲興), 구맹(寇猛), 조수(趙修), 여호(茹皓), 조옹(趙邕), 후강(侯剛), 정엄(鄭儼), 서흘(徐紇)
권94엄관(閹官)종애(宗愛), 구낙제(仇洛齊), 단패(段霸), 왕거(王琚), 조흑(趙黑), 손소(孫小), 장종지(張宗之), 극붕(劇鵬), 장우(張祐), 포의(抱嶷), 왕우(王遇), 부승조(苻承祖), 왕질(王質), 이견(李堅), 진송(秦松), 백정(白整), 유등(劉騰), 가찬(賈粲), 양범(楊範), 성궤(成軌), 왕온(王溫), 맹란(孟鸞), 평계(平季), 봉진(封津), 유사일(劉思逸)
권95유총(劉聰), 석륵(石勒), 유호(劉虎), 모용외(慕容廆), 부건(苻健), 요장(姚萇), 여광(呂光)
권96사마예(司馬叡), 이웅(李雄)
권97환현(桓玄), 풍발(馮跋), 유유(劉裕)
권98소도성(蕭道成), 소연(蕭衍)
권99장식(張寔), 걸복국인(乞伏國仁), 독발오고(禿發烏孤), 이고(李暠), 저거몽손(沮渠蒙遜)
권100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물길(勿吉), 실위(失韋), 두막루(豆莫婁), 지두우(地豆于), 고막해(庫莫奚), 거란(契丹), 오락후(烏洛侯)
권101저족(氐), 토욕혼(吐穀渾), 탕창국(宕昌), 고창국(高昌), 등지(鄧至), (蠻), 요(獠)
권102서역(西域)선선(鄯善), 우전(于闐), 차사(車師), 언기(焉耆), 구자(龜茲), 오손(烏孫), 소륵(疏勒), 열반(悅般), 파사(波斯), 대월씨(大月氏), 안식(安息), 대진국(大秦國)
권103연연(蠕蠕), 우문막괴(宇文莫槐), 단취육권(段就六眷), 고차(高車)
권104자서(自序)


3. 3. 지(志)

《위서》의 〈지〉는 천문, 지리, 예법, 음악, 경제, 형벌, 관직,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제도 및 문물 기록을 담고 있다. 〈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제목비고
천상지(天象) 1
천상지(天象) 2
천상지(天象) 3
천상지(天象) 4
지형지(地形) 上
지형지(地形) 中
지형지(地形) 下
율력지(律曆) 上
율력지(律曆) 下
예지(禮) 1
예지(禮) 2
예지(禮) 3
예지(禮) 4
악지(樂)
식화지(食貨)
형벌지(刑罰)
영징지(靈徵) 上
영징지(靈徵) 下
관씨지(官氏)
석로지(釋老)


4. 한국사와의 관계

(이전 출력이 비어있었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빈칸으로 출력합니다.)

5. 비판 및 한계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이 붙었다.[1] 위수가 북제의 신하였기 때문에 북제 중심의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비판과, 위수의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되어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현존하는 위수의 《위서》는 북송대에 교정되었을 때 30권 정도 소실본이 발견되어 《북사》에 의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텍스트에도 보충 부분이 명기되어 있다.[8]

위진남북조 시대의 정사(正史)는 《삼국지》, 《진서》 외에는 빠진 부분이 종종 있으며, 《송서》 등과 같이 북송 시대에 《북사》, 《남사》 및 기타 야사를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 많은데, 《위서》도 마찬가지이다. 사고전서총목제요에 따르면 현존하는 위수의 《위서》 역시 북송 시대에 교정할 때 29편의 산실이 발견되어 《북사》에 의해 결함을 보충했다.[8]

5. 1. 편향성 문제

魏書중국어는 편찬 당시부터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이 붙었다.[1] 위수가 북제의 신하였기 때문에 북제 중심의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비판과 위수의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되어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5. 2. 내용 오류 및 누락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이 있었다. 현존하는 위수의 《위서》도 북송대에 교정되었을 때 30권 정도 소실본이 발견되어 《북사》에 의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텍스트에도 보충 부분이 명기되어 있다.[8]

위진남북조 시대의 정사(正史)는 《삼국지》, 《진서》 외에는 빠진 부분이 종종 있으며, 《송서》 등과 같이 북송 시대에 《북사》, 《남사》 및 기타 야사를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 많은데, 《위서》도 마찬가지이다. 사고전서총목제요에 따르면 현존하는 위수의 《위서》 역시 북송 시대에 교정할 때 29편의 산실이 발견되어, 《북사》에 의해 결함을 보충했다는 기록이 있다.[8]

6. 현대적 의의 및 평가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적국을 폄하하고 사적인 원한을 풀기 위해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남조를 '섬 오랑캐'와 같다고 폄하하고, 남조 사람들을 '맥자(너구리)'라고 헐뜯는 등 편파적인 서술로 인해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위서》의 사례는 역사 기록의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역사서를 비판적으로 읽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 역사 연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6. 1. 역사적 가치

비록 《위서》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북위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사료로 평가받는다.[3] 특히, 북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내용은 북위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위수는 대(代)부터 북위 초기까지의 매우 혼란스럽고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조화시키고 일관성 있는 사건 기록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받았다.[4]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 본기의 첫머리에 태조 도무제의 기록이 아닌 북위 건국 이전 탁발부의 역사를 기록하는 〈서기〉를 두고 있다.
  • 북제 때 편찬되었기 때문에 동위를 정통으로 서술하였다.
  • 열전에 5호의 여러 나라와 남조의 계승을 내세우는 점.
  • 불교·도교 관련 기사를 수록하는 석로지를 세우고 있는 점.


하지만,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적국을 폄하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해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 서위의 삼제 본기를 세우지 않았다.
  • 남조를 '섬 오랑캐'와 같다고 폄하하고, 남조 사람들을 '맥자(너구리)'라고 헐뜯었다.
  • 남조의 군주 유유를 유씨를 사칭한 것으로 폄하하고, 출신지도 알 수 없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이유로 '예사(더러운 역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위·북주·를 정통으로 하는 위담의 《위서》(92권)나, 의 장대소가 저술한 《후위서》(100권)도 존재했지만,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6. 2. 동아시아사 연구 기여

《위서》는 북위뿐만 아니라 고구려, 백제, 유연, 토욕혼 등 주변 국가 및 민족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어 동아시아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특히, 한국 고대사 연구에 있어 《위서》의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한국 사서의 기록과 비교 분석을 통해 그 가치를 더한다.[3]

6. 3. 현대적 교훈

僞書|위서중국어 편찬 과정과 내용은 역사 기록의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특히, 편찬 당시부터 적국을 심하게 깎아내린다는 평판이 있었으며, 저자의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해 공정을 잃은 기술이 이루어졌다는 비난을 받으며 '예사'(더러운 역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서를 비판적으로 읽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7. 판본


  • 백납본 (송·촉 대자본)
  • 1974년 중화서국 평점본

8. 관련 자료

(주어진 원본 소스가 없으므로, 관련 자료 섹션은 비워둡니다.)

참조

[1] 서적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2] 서적 The Road to Miran: Travels in the Forbidden Zone of Xinjiang HarperCollins, Great Britain. Flamingo edition 1994
[3] 서적 The Biography of Wei Shou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1964
[4] 문서
[5] 서적 魏書 匈奴劉聡伝
[6] 서적 魏書 列伝第八十五、島夷桓玄・海夷馮跋・島夷劉裕伝
[7] 서적 魏書 列伝第八十五・島夷劉裕伝
[8] 서적 四庫全書総目提要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